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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사회의 변화
1850년대에 호주에서 처음 금이 발견되면서, 호주 식민지가 변화되는 일련의 러시가 시작되었습니다. 금이 발견된 첫 번째 장소는 뉴사우스웨일스의 오피르와 빅토리아의 밸러랫과 벤디고 크릭이었습니다. 금이 발견됐다는 소식과 함께 1851년에는 전 세계에서 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때문에 호주의 역사가 이때부터 바뀌게 되었습니다. 금의 발견으로 호주의 인구는 엄청나게 늘었으며, 경제가 활성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국가의 정체성이 출현하게 되고,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모든 방면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밸러랫에는 약 1천 여개의 광산터가 남아있으며, 블랙 힐 지역에는 약 50개의 광산터가, 브라운 힐 디깅스에는 약 3백 개에서 4백여 개의 광산터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금의 발견
1941년 식민지 시절 초기 지질학자였던 윌리엄 브랜화이트 클라크 목사는 블루 마운틴 하틀리 지역에서 금 입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3년 뒤인 1844년 윌리엄 브랜화이트 클라크 목사는 당시 주지사였던 깁스라는 사람에게 이러한 사실을 얘기했는데, 그는 전혀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목사를 당장 내쫓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깁스 주지사는 호주가 전과자와 죄수들로 가득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의 사람들을 헤칠 수 있다는 걱정에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4년 뒤인 1848년 윌리엄 티플 스미스라는 광물학자는 배서스트 지역에서 금을 발견하게 되고, 이듬해 뉴사우스웨일스를 담당했던 에드워드 톰슨 장관도 금을 발견하게 됩니다. 윌리엄 티플 스미스 광물학자는 자신이 금을 발견했다고 해서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에드워드 하그레이브스라는 또 다른 인물이 금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정부로부터 많은 보상을 받게 됩니다. 정부의 이와 같은 조치로 인해 1848년 금을 캐러 사람들이 몰려오게 됩니다. 태평양 전역에 퍼진 금 발견 소식은 수천 명의 남성들을 불러들였고,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력 부족과 경제 불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챨스 피츠로이 주지사도 이 소식을 듣고, 금 발견은 침체되어 있던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때문에 그다음 해인 1849년 영국 정부를 설득하여 지질학자였던 사무엘 스터치버리를 호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는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금을 가려내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정부는 가능한 한 많은 양의 금을 채굴한 사람에게 막대한 보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금이 발견된 곳에 모여 금을 캐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에드워드 하그레이브스
에드워드 하그레이브스는 1849년 호주에서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골드 러시를 위해 호주로 오게 됩니다. 호주에 도착해서 캘리포니아와 뉴사우스웨일스 내륙의 지질학적 특성을 보고 그는 매우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금이 발견되는 곳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애드워드 하그레이브스는 이러한 사실을 정부에게 알리면, 막대한 보상을 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때문에 배서스트 지역에서 존 리스터와 윌리엄 톰, 제임스 톰이라는 사람들과 함께 금이 나올 만한 곳들을 찾았습니다. 몇 주만에 그들은 오피르라는 유적지에서 약간의 금을 발견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하그레이브스는 시드니에 있는 정부 청사를 찾아 금 샘플을 제출하였습니다. 당시 정부관리였던 사무엘 스터치버리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금이 나온 장소로 향했습니다. 에드워드 하그레이브스는 결국 엄청난 상금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 실리게 되고, 1851년 수많은 땅 굴착기가 오피르에 도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뉴사우스웨일스로 금을 캐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빅토리아 정부도 멜버른에서 약 2 백마일 이내에 금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약 2 백 파운드의 보상금을 지불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몇 개월 뒤 클룬즈 지역에서 금이 발견되었고, 뒤를 이어 밸러랫, 벤디고, 캐슬메인 등지에서 금이 발견되기 시작했습니다. 금의 발견으로 인해 호주 식민지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후 1852년에는 태즈메이니아에서, 1857년에는 퀸즐랜드에서, 1871년에는 노던 테리토리에서 금이 계속 발견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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