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팅게일과 시드니 병원
시드니 병원
현재 시드니 병원과 시드니 안과 병원은 맥쿼리 거리에 있습니다. 이 두 병원은 하나의 병원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시드니 병원은 호주 최초의 병원입니다. 1788년에 영국의 제1811함대가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868년 루시 오스번은 호주의 요청에 의거하여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현재의 시드니 병원이 있는 곳에 호주 최초의 간호학교를 만들게 됩니다. 1822년 시드니 안과 병원은 밀러스 포인트에서 시작되었지만, 1922년에는 울루물루로 병원을 이전하게 됩니다. 그 후 1996년에 최종적으로 맥쿼리 거리로 병원을 옮기면서, 지금의 시드니 병원과 시드니 안과 병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이 병원은 호주 시민들과 근로자, 호주 여행객들 모두에게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병원 이야기
호주의 의료 행정을 담당했던 존 화이트 외과의사는 시드니 코브 서쪽에 위치한 도스 포인트에 텐트라는 이름을 가진 병원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호주 의료를 이끈 사람은 라클란 맥쿼리라는 주지사였는데, 그는 지역 사업가들과 힘을 합쳐 종합병원 건설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병원 건설에 대한 자금을 사업가들로부터 받고, 그 대신 럼주라는 술의 독점 판매권을 그들에게 부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 시드니 병원의 이름이 럼 병원이 된 것입니다. 맥쿼리 거리의 약 1816 에이커에 달하는 면적에 병원이 세워졌으며, 죄수들의 치료는 주로 존 화이트 외과의사가 담당하고 있는 텐트 병원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멧돼지 동상
시드니 병원에 설치되어 있는 멧돼지 동상은 병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멧돼지 동상은 약 5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로마 유적지에서 발견된 포르첼리노 작품의 사본입니다. 이 멧돼지 동상은 1909년 시드니 병원의 의학연구의장이 되어 활동한 토마스 피아치라는 외과의사가 1902년 병원에 기증하였다고 합니다.
나이팅게일 박물관
나이팅게일 박물관에는 의학과 관련된 자료들과 여러 의료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어 매우 흥미로운 장소입니다. 맨 처음 호주에 병원이 설립된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귀한 유물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물품들은 시드니 병원의 간호사였던 엘리노 로벨이라는 사람이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이팅게일 박물관에는 여러 사진들과 공예품, 의사와 간호사들의 가운 등을 포함한 총 2천여 개의 물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의료시설을 재현한 것들도 있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 박물관의 놀라운 점은 1890년부터 1985년까지 사용된 해부학 자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박물관은 문을 닫았는데, 새로이 단장을 마치고 사람들에게 다시 선보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진료소
호주의 최초 장관이었던 알렌산더 맥클레이와 시드니 대학을 설립한 윌리엄 블랜드는 자선단체를 설립하여 시드니 진료소를 만들게 됩니다. 여러 의약품들을 진료소에 공급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힘썼습니다. 그 당시 약 1800여 명의 의료 관계자들이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치료를 해주겠다고 지원했으며, 랄프 달링 주지사는 이 진료소의 후원자가 되겠다고 나섰습니다. 1840년이 되자 진료소 관계자들은 시드니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입원시설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장기간 치료를 요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야 했던 것입니다. 1843년 주지사 조지 깁스는 럼 병원의 남쪽에 병원 의무실을 세울 수 있도록 법적인 허가를 내주게 됩니다. 그 후 시드니 진료소는 합법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많은 의사들을 유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진료소가 법적으로 인정을 받자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게 됩니다. 정부는 병원의 세 건물 가운데 메인 빌딩을 럼 병원으로 지정하고, 외래 환자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게 됩니다.
초기의 병원 상태
안타깝게도 초기의 병원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병원은 환자들로 인해 시끄럽고 지저분해졌으며, 병동에는 쥐, 빈대, 이 등이 들끓어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 갔습니다. 1866년 병원의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낀 호주 장관 헨리 파크스는 영국에 있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숙련된 간호사들을 보내달라고 했으며, 루시 오즈번이라는 간호사를 주축으로 하여 자격을 갖춘 약 1867명의 많은 간호사들이 호주에 도착하게 됩니다. 병원의 상태를 파악한 루시 오즈번은 위생 상태를 개선하려 했지만, 기존에 있던 병원 관리자들과 심한 마찰을 빚게 됩니다. 1871년 병원에는 약 23만 명이 넘는 인구에 비해, 1천여 개의 침상만이 준비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부족한 의료시설 때문에 처음 의도와는 달리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루시 오즈번이 직접 영국 왕립 위원회에 알리고, 시드니 병원의 상황을 개선시키기 위한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청하게 됩니다.